등나무 줄기, 흰쥐와 검은쥐

인간의 실상 – 등나무 줄기, 흰 쥐와 검은 쥐

인간의 진정한 모습, 즉 ‘인간의 실상’을 알게 되면 왜 불교를 들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인간의 실상’의 예화에 나온 비유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가느다란 등나무 줄기, 그리고 흰 쥐와 검은 쥐가 무엇을 비유하고 있는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나그네가 매달려 있는 가느다란 등나무 줄기는 우리의 짧은 수명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 가느다란 등나무 줄기를 마치 굵은 와이어인 것처럼 착각하고 꽉 붙잡고 있는 나그네의 모습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목숨인데도, 언제까지나 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비유한 것입니다. 실상(實相)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가느다란 등나무 줄기, 언제 무상(無常)의 호랑이가 덮칠지 모르는 우리의 수명인데 말입니다.
과학 기술과 의료기술이 발전해서 수명이 연장되었다고 하더라도 길어야 100년입니다. 우리의 수명이 얼마나 덧없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인간에 비해 수명이 훨씬 짧은 생명체와 비교해보겠습니다.
여름에 시끄럽게 우는 매미는 수명이 7일입니다. 여름에 태어나 7일이라는 짧은 생을 사는 매미는 봄과 가을을 모릅니다. 매미의 지혜로는 도저히 다른 계절이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아침에 생을 시작해서 저녁에 생을 마감하는 하루살이는 수명이 7시간입니다. 하루살이는 밤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인간의 수명을 70년이라고 본다면 매미의 하루는 인간의 10년에 해당하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루살이에게는 1시간이 인간의 10년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인간의 지혜로 볼 때, 매미나 하루살이의 수명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무한한 수명을 지니신 부처님의 지혜로 보면, 인간의 수명 역시 한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수령이 몇 백 년 되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령이 700년인 나무는 인간의 수명의 10배나 됩니다. 이런 나무들과 비교해보아도 인간의 수명은 짧디 짧습니다.
대우주의 시간과 비교해본다면 어떨까요? 지구의 수명과 비교해봅시다. 지구가 탄생한 시점으로부터 오늘날 까지를 1년으로 보는 달력을 누군가 고안했다고 합니다. 지구의 나이는 46억 살, 즉 46억 년 전에 지구가 태어났습니다.

1월 1일 00시가 지구가 태어난 시점이고, 오늘을 12월 31일이라고 보는 달력입니다.
그러면 지구에 공룡이 살았던 시기는 언제까지가 될까요.
공룡은 지금으로부터 2억 2천만 년 전까지 지구상에 존재했었다 고 합니다. 1월 1일을 46억 년 전으로 본다면 2억 2천만 년 전은 약 12월 13일 정도가 됩니다.
인간이 이 지구상에 살기 시작한 것은 약 2백만 년 전이라고 합니다.
저 달력으로 보면 12월 31일 오후 8시 정도 됩니다.
이번에는 21세기가 시작된 시점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로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 탄생4,600,000,000년 전1월 1일 00시
공룡 존재220,000,000년 전12월 13일경
인간 탄생2,000,000년 전12월 31일 20시경
21C 시작24년 전12월 31일 23:59:59

이 지구의 달력 속에 우리의 수명을 표시한다면, 아주 작게 점으로 찍어야 할만큼의 시간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찰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덧없는 인생에서 그저 즐겁게 사는 것이 능사일 수 없습니다. 찰나의 인생이 끝나고 나면 죽은 뒤, 후생(後生)은 어떻게 되는지가,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원한 생명,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 당시, 부처님께서 인간의 수명에 대해 수행자들과 나누신 문답의 내용이 남아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인간의 수명은 얼마나 되는지’ 묻자,
첫 번째 수행자가 ‘5~6일 정도 되는 짧은 시간’ 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두 번째 수행자가 ‘그렇게 길지 않다, 식사하는 정도의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세 번째 수행자가 ‘한숨 쉬는 시간도 안 됩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세 번째 수행자의 대답을 칭찬하시며 ‘들이쉰 숨을 내쉬는 숨이 기다려주지 않는 것이 인간의 수명(목숨)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인간의 목숨은 찰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이렇게 짧다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하면 값지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짧디 짧은 수명을 비유하고 있는 가느다란 등나무 줄기를 교대로 갉아먹고 있는 흰 쥐와 검은 쥐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요?
바로 낮과 밤입니다. 흰 쥐는 낮을, 검은 쥐는 밤을 비유합니다.
두 마리의 쥐는 게으름도 피우지 않고 똑같은 템포로, 아주 성실하게 등나무 줄기를 갉아 먹고 있습니다. 낮이 지나고, 밤이 지남에 따라 점점 우리의 수명이 줄어드는 것을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등나무 줄기를 마지막으로 갉아 먹은 것이 흰 쥐라면 그 사람은 낮에 목숨이 다한 사람이고, 저녁에 돌아가신다면 검은 쥐가 마지막으로 등나무 줄기를 갉아 먹은 셈이 됩니다.
여러분의 등나무 줄기는 어떤 쥐가 마지막으로 갉아먹게 될 것 같으신가요.
흰 쥐일까요, 검은 쥐일까요?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인간의 목숨은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살아있을 때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사는가’ 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그 뒤, 즉 죽은 뒤(死後)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생각해야만 합니다. 죽은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문제, 이것을 생사(生死)의 일대사(一大事)라고 합니다.
이 생사의 일대사는 누구라도 불법(佛法)을 들음으로써 반드시 해결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