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독룡

인간의 실상 – 푸른독룡(탐욕)

인간의 실상 예화는 동서고금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예화입니다.
<인간의 실상>을 전반, 후반으로 나누면 전반은 무상(無常)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백골과 호랑이, 등나무 줄기, 흰 쥐와 검은 쥐의 내용까지 였습니다.

후반부는 죄악(罪惡)에 대한 내용입니다.
나그네는 등나무 줄기만 잡고 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으나, 밑을 바라보니 푸른색, 붉은색, 검은 색의 독룡 세 마리가 깊은 바다에서 벌건 입을 크게 벌리고 있습니다.
이 세 마리의 독룡은 바로 우리의 마음 속의 3독의 번뇌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번뇌구족의 범부(煩惱具足의 凡夫)’라고 설명합니다.
‘번뇌(煩惱)’란 우리를 고뇌하고 번민하고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구족(具足)’이란 덩어리, ‘범부(凡夫)’는 인간을 가리킵니다. 즉, 인간은 번뇌 덩어리, 번뇌 100%, 번뇌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에게서 번뇌를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눈사람이 눈 구족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눈사람이 햇빛을 받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눈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인간에게서 번뇌가 없어지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번뇌 덩어리인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이 번뇌는 모두 108개가 있습니다. ‘나는 번뇌가 너무 많은데’ 싶어도 108개고, ‘저 사람은 번뇌가 별로 없어 보인다’ 싶어도 108개입니다. 108개의 번뇌 중에서 대표적인 3가지가 바로 맹독을 가진 3독의 번뇌, 즉 탐욕, 진에, 우치입니다.

오늘은 푸른색 용으로 비유되고 있는 탐욕(욕망, 욕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탐욕이란 없으면 없기 때문에 원하고, 있으면 더 더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무한히 커져가는 욕심입니다. 탐욕을 푸른색에 비유한 것은 푸른색의 바다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 색이 더 짙어지듯이, 푸른색은 깊이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탐욕은 짙푸른 바다처럼 끝을 알 수 없이 깊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모두 욕심 때문에 괴로워하고 고뇌하고 있습니다.
무한리필집이나 뷔페에 식사를 하러 가보셨을 것입니다. 얼마든지 가져다 먹을 수 있고, 모처럼 뷔페에 왔으니 안 먹어본 메뉴가 없도록 다 먹습니다. 그렇게 욕심껏 다 먹고 나서 식당을 나설 때가 되면 후회가 밀려오곤 합니다.
인간은 욕심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괴롭습니다. 그래서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욕심이 충족되었다고 해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더 원하게 됩니다.

중국에, 양쯔강이 다 내려다보이는 왕궁이 있었습니다. 양쯔강에 많은 배가 오갔는데, 왕궁의 왕이 신하에게 ‘얼마나 많은 배가 다닐까’ 하고 물으니 신하가 ‘두 척’이라고 대답합니다. 왕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꾸짖자, 신하는 ‘아무리 많은 배가 있어도 명리(名利)의 배 두 척 뿐’이라고 대답하자, 왕이 납득했다고 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고속도로에 수많은 차가 오가도 명리(名利)의 차 두 대뿐인 것입니다. 이리로 저리로 쏘다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지만, 모두 이익을 추구하러 다니거나, 명예를 위해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어떤 나라에 국왕이 있었습니다. 국왕이 농민들에게 ‘해가 떠 있을 때 뛰어갔다가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면 그 면적만큼 땅을 주겠다’ 라고 했더니, 내가 해보겠다고 자원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해가 뜨자마자 출발점을 출발해 걷기 시작한 농부는 좀 걷다가 생각해보니, 멀리 가면 더 넓은 땅을 가질 수 있겠다 싶어 뛰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중천에 걸리자 이제 돌아가야지 싶어 되돌아갑니다. 걷다가 걷다가 해가 뉘엿해지니 마음이 급해져 뛰기 시작합니다. 열심히 뛰어서 겨우 겨우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에 도착했지만 그와 동시에 탈진해서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리고 맙니다.
국왕은 ‘이런 자에게 이렇게 넓은 땅은 필요가 없었다. 단지 자기 몸 묻힐 정도의 땅만 있었으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은 끝없는, 깊고 깊은 욕심에 휘둘려져 결국에는 저 농부처럼 쓰러져 버리고 맙니다. 욕심은 충족되지 않아서 괴롭고, 충족되면 더 더 갈구하게 되어 괴로운 것입니다. 이것이 갈애의 법칙입니다.

태평양 한 가운데 보트 위에 나 혼자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무더운 여름이고, 가지고 온 물도 다 마셔버려서 더 이상 없습니다. 너무 목이 말라서 주변에 있는 물이라고는 바닷물밖에 없기 때문에 한 모금 마십니다. 마실 때는 기분이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순간이고, 소금기가 목에 남아 바닷물을 마시기 전보다 더 갈증이 납니다. 그러면 처음 마신 것보다 2배의 양을 마시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또 소금기가 남아 더 더 목이 마르게 됩니다. 이것이 반복되어 괴로워지는 것이 갈애의 법칙입니다.
우리의 욕심은 충족될수록 더욱더 깊어집니다.
도박은 바로 이 갈애의 법칙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입니다. 도박에서 이겨 돈을 벌어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또 도박을 하러 와서 계속 하게 되면 결국에는 지게 되고 돈을 잃게 됩니다. 도박으로 돈을 잃은 사람은 도박으로 다시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 가족에게서 돈을 빌려 재산을 탕진하게 됩니다.
도박에 빠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은 탐욕 때문에 괴롭습니다.
어떻게 하면 욕망을 채울까 하는 생각만 하는 인생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욕망과는 관계 없이 행복해지는 세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 진정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 불법을 들읍시다.